좋은 글/시인의 詩

국화옆에서 / 서정주 ...김복선 교수님 편 ..

和潭 2010. 1. 24. 18:58

국화옆에서 / 서정주 ...김복선 교수님 편 ..


 

 

 

 

국화 옆에서
                                      

                                 - 서정주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

 

 

이 작품은 한 송이의 꽃이 피어나기까지 오랜 시간 동안 거쳐야 했던 아픔과 어려움의 과정을 비유적으로 형상화하면서, 그렇게 하여 이루어진 꽃의 모습에서 삶의 깊이와 생명의 본질적 모습을 읽어내고자 하는 주제의식을 담은 시다.

 

국화꽃이라는 하나의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 속에 봄의 소쩍새 울음과 여름의 천둥 번개, 그리고 가을의 무서리 등 여러 가지 체험이 융합되어 있다. 생명이 탄생하는 그 순간은 결코 고립되거나 정태적인 순간이 아니다. 여러 체험들이 퇴적됨으로서 그 순간은 시간의 지속 가운데 많은 과거들이 내포되어 집중적으로 압축되어 있는 한 통일체를 형성하는 순간이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체험의 순간적 표현이라는 본래의 서정 양식 속에서 체험의 연속성을 두드러지게 나타내고 있다.   

 

이 시에서 제시된 누님의 모습은 확실히 어떤 성숙하고 은은한 동양적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그것은 곧 삶의 욕망을 격정적으로 노래했던 시인이 조화로운 삶의 원형을 회복하고자 하는 새로운 시적 경지를 확보했음을 뜻하기도 한다.   

아무튼 이 작품은 흔하디 흔한 사물인 국화에 대해 새로운 시선을 가지고 살펴본 결과이며, 국화에서 생명이 탄생하기까지의 우주적 질서를 포착한 시다.

  

 

-자작시 해설-

 "젊은 날의 흥분과 모든 감정 소비를 겪고, 인제는 한 개의 잔잔한 우물이 호수와 같이 형(型)이 잡혀서 거울 앞에 앉아 있는 한 여인의 미의 영상….  내가 어느 해 시로 이해한 정일(靜逸 : 조용하고 심신이 편안함)한 40대 여인의 미의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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